
파편화된 인격, 충격의 재판
1977년 22세의 빌리 밀리건은 오하이오주립대 인근에서 세 여성을 납치, 강도 및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다. 수감 직후 배정된 공공 변호인의 도움 아래, 밀리건은 자신이 범행을 직접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을 훔친 행위는 ‘레이건’, 여성들을 성폭행한 일은 ‘아달라나’라는 다른 인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추가 심리 검사 결과, 무려 10개의 인격이 존재함이 밝혀지면서 1978년 12월 4일 9건의 혐의에 대해 ‘정신 이상에 의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후 14개의 추가 인격이 더 발견되면서 빌리 밀리건은 본래 인격을 포함한 24개의 인격으로 완전히 분산된다.
도주와 재수감의 긴 여정
재판 이후, 밀리건은 8년간 정신병원과 교도소를 오가며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1986년 7월 4일, 오하이오의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그는 ‘크리스토퍼 카’라는 가명을 사용, 워싱턴주 벨링햄에 정착하였으나 동거인이었던 마이클 매든의 실종과 그 소지품이 그의 아파트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도주 상태에 빠졌다. 결국 플로리다에서 체포되어 오하이오로 송환된 후, 독립 정신과 의사의 평가에서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받으며 풀려나게 되었고, 이후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돌아와 여동생이 마련한 이동식 주택에서 지내며 그림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59세의 나이로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였다.
피해자와 사회적 아픔의 그림자
밀리건의 사건은 그의 다중 인격으로 인한 판결과 함께, 피해자들의 고통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작가 다니엘 키이스는 1981년 수차례의 인터뷰 끝에 《빌리 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The Minds of Billy Milligan)》을 출간하며 사건의 이면을 폭로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이처럼, 사건은 범죄 기록 이상의 사회적 아픔과 논란을 안고 있다.
최신 과학 기술이 밝혀낸 다중 인격의 비밀
실제 해리성 정체성 장애 환자들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 양식과 필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빌리 밀리건은 각 인격이 서로 다른 행동, 필체, 언어를 보였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계부 찰머에게 당한 심각한 신체 및 성적 학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한 지속적인 학대가 다중 인격 장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최신 MRI 기술과 정밀 분석 기법을 통해 인격별 뚜렷한 뇌 활동 차이가 확인되면서,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혁신적인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 또한, 반복된 외상 경험이 인격 분열의 주된 원인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아동 학대 예방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빌리 밀리건의 사건은 단순한 범죄 기록을 넘어, 다중 인격이라는 복잡한 심리 현상과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다뤄진 많은 사회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미디어와 최신 과학 기술의 재조명은 당시 감춰졌던 진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며, 독자들로 하여금 앞으로의 연구와 사회적 대응에 관심을 갖도록 한다.